友于堂

우우당

수락산 입구의 덕성여대 생활관인 우우당은 영풍 부원군 홍봉한이 영조 37년과 44년 두번씩 영의정을 지냈을 당시 벽운동 별장 안채의 일부이다. 별장 안채 지금의 생활관에는 추사글씨 友于堂 현판이 걸쳐 있었으며, 정문 앞 살구나무 근처에는 승마대가 지금도 남아 있다. 홍씨 일문이 한창 위세를 떨칠때 벽운동 별장에는 문인정객들이 모여들어 탄금대와 백운루 우우당은 초만원을 이루는 때가 많았다. 우우당에서는 당대의 석학과 정치인들이 신학과 충효를 논하였다. 홍봉한의 맏딸인 혜경궁홍씨도 어린시절 부모를 따라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정성을 키워, 후에 한중록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벽운동의 주인 홍봉한은 정조 즉위후 3년만인 무술(1778년)2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약 100년 뒤에는 이병직의 고조되는 부원군이 벽운동의 명승지를 사들여 5대에 걸쳐 지켜오다가 이병직대(1957년 6월)에 이르러 덕성학원에서 매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1241번지

벽운동천

 

수락산 계곡 냇가에는 큼직한 바위에 벽운동천(碧雲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수락산 계곡으로 흐르는 천을 벽운천이라 부르며, 이곳에 있는 마을을 벽운동 또는 백운동이라 부른다. 이것은 계곡에 바위가 허옇게 드러난 수락산의 절경이 골짜기의 계곡과 어우러져 흰구림이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벽운동이 홍봉한의 소유로 우우당이 번창할때 여러 현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지명과 관계된 것이 있다. 백운루(白雲樓)라는 목각현판과 벽운동천(碧雲洞天)이라는 현판이 그것인테 지금은 간곳을 알 수 없다. 벽운동은 약 100여년전에 이병직 일가의 소유가 되었고 벽운동천이라 새긴 바위옆에는 이병직의 호인 국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노원구 상계동 1240번지

 

우우당은 송은선생의 한동안 기거하시던곳이 랍니다...

우우당

우우당은 영조때 영의정을 두 번 지낸 영품부원군 홍봉한이 세운 당시의 벽운동 별장 안채의 일부로 추사글씨 우우당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홍씨 가문이 위세를 떨칠 때 벽운동 별장에는 문인·정책들이 모여들어 탄금대와 벽운루·우우당은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홍봉한의 맏딸인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정성을 키웠고, 후에 ≪한중록≫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백운동의 주인 홍봉한이 세상을 떠난 약 100년 뒤에는 이병직의 고조되는 부원군이 백운동의 명승지를 사들여 5대에 걸쳐 지켜오다가 1957년 6월에 이르러 덕성학원에서 매입하여 덕성여대 생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우우당 건물이 있는 덕성여대 생활관 자리에는 우우당 이외에도 여려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전체 구역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담장이 원래 우우당이 만들어질 당시의 범위를 나타내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래의 구역범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우당 건물로 들어가는 대문은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다. 이곳은 원래 승마대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입구의 좌측에 크고 오래된 고목자리가 승마대일 가능성이 크다.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다시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데 이 담장은 우우당과 다른 건물들을 구별하기 ?위한 별도 구역으로 보인다. 우우당 건물은 내부 담장 안쪽에 있으며 평면형태는 ' ㄱ '자로 되어있다. 우우당 앞 좌측에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는데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우당 건물이 있는 구역 외부는 전체적으로 정원을 꾸며놓아 정원소와 고목, 꽃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넓은 공간에는 이전에 건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사각형 형태를 지닌 주춧돌들이 여러 곳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주춧돌들은 이곳 주변을 정리하는 가운데 모두 파괴 훼손되어 원위치에서 이동되었으며 지금은 주로 나무를 보호하는 받침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우물. 근래에 지은 정자. 수령이 수백 년으로 추정되는 나무들이 여러 곳에 있다. 그리고 우우당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풍경이 있는 계곡이 있는데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며, 또한 이 바위에는 암각문도 발견되고 있어 풍류가 있었던 경치 좋은 곳으로 에전부터 이름난 곳이였다고 생각된다. 이 계곡은 차갑고 서늘한 곳으로, 여기에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움푹한 곳이 있는데 "석빙고"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다른 우우당 이야기^^**

북한산이나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등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참으로 축복받은 도시다. 번잡한 도시에서 차를 버리고 불과 몇 걸음만 내딛으면 울창한 숲길, 계곡을 오르며 시원한 물소리에 귀를 씻을 수 있으니 이 행복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지난 주에 수락산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뿌려서 그런지 등산객이 없어 등산로는 한적했다. 그 적요한 길을 따라 가다가 ‘우우당’이란 안내판을 발견했다. 영조 때 벼슬한 홍봉한의 별장인데, 지금은 덕성여대 생활관으로 사용하면서 사방을 높은 담으로 막아 놓아 도무지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홍봉한이 누구인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로 당시에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큼 세도가 당당했던 이다. 이처럼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별장이었던 터라 ‘우우당’이 있는 이곳 벽운계곡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락산은 세조가 집권한 이후 매월당 김시습이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숨어든 산이기도 하다. 구한말에는 명성황후가 이곳 용굴암에 잠시 피신한 적이 있다고도 전한다. 금류폭과 은류폭, 옥류폭으로 이어지는 수락8경에 신라 때의 고찰 흥국사와 학림사, 조선 시대에 창건된 내원암 등의 불교문화유산 역시 만만치 않으니 건너편 북한산국립공원만큼이나 빼어난 화강암 벼랑을 가진 수락산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은둔의 산이자 수도자들의 거처였던 수락산이 서울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주변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게다가 지하철 노선이 두 개나 들어오고 보니 수도권 어디에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더욱 많은 이들이 즐겨 찾고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우당’ 같은 명소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수련 활동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문화재 보호라는 측면에서라면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관리인도 따로 둘 수 있으니 청소년들에게도 유익한 문화유산답사의 현장이 될 수 있으리라.

최근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묘도 그러한 취지에서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바로 앞에 800년 된 은행나무와 원당샘, 더불어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간을 높은 담 안에 가둬둔다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다.

 
주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755번지, 전화번호 : 010-8666-4710
송은기념관은 문화관광부에 등록(제 0호)된 테마박물관입니다.
Copyrights(c) 2011. songun Museum. All rights resreved. Contact for more information.